제 2장. 일곱 가지 빛깔
마계.
참 재미있는 곳이었다.
마계에는 빛이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지. 그저 이공간을 떠돌 뿐인 작은 행성 조각이었으니까. 하지만 가끔 마계가 태양이 존재하는 행성에 결착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외부세계와의 공간이 열리며 빛이 조금씩 마계로 굴절되어 흘러 들어왔다. 굴절된 빛은 일곱 가지 빛깔로 갈라져 하늘을 수놓았다. 이때만큼은 마계가 이 우주 어느 행성보다 황홀한 곳이 되었다. 어둠만이 존재하던 이 세계는 가끔이나마 이렇게 보상받았다.
빛이 마계를 비출 때면 나는 마계의 곳곳을 여유롭게 날아다녔다. 보이는 것이 있어야 나는 것도 즐거운 법이니까.
그러나 아름다운 빛이 비친다고 현실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저기 흉물스럽게 무너져가는 건물들 사이사이, 이름 모를 시체들이 썩어가고 있었다. 벽마다 흩뿌려져 있는 핏자국은 그 시체들이 남긴, 이를테면 이세상 마지막 지문 같은 것이지만.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얼마나 장렬하게 피를 뿜으며 죽었는가를 가지고 삶의 가치가 매겨지지는 않는다. 안타깝게도 피의 색깔은 일곱 가지가 아닌데. 그저 붉은 색일 뿐인데.
여기저기 제각각으로 생겨먹은 생명체들이 무리 지어 신나게 싸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들은 저렇게 사는 것이 - 아니 죽는 것이 -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왜 모를까. 이름 모를 시체가 되기 위해 저리도 발버둥 치다니.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저들이 목표하는 바는 분명했다. 그들은 자신이 “사도”이기를 바랬다. 온 우주로부터 마계에 모인 제각각인 생명체들이 오로지 한마음으로 고개를 숙이는 이름. “사도”. 두려움의 상징. 칭송의 대상. 그리고 언젠가 사람들이 나를 칭하여 부르는 이름. “사도 바칼”.
사람들에게 비치는 나의 색깔 또한, 일곱 가지가 아니라 그저 붉은 색일 뿐이었던 것이다.
사도라고 불리는 자는 나 말고도 몇 명이 더 있었다. 나는 그들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실력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놀랍게도 그들 모두에게서는 힐더에게서 느껴졌던 바로 그 기운 – 나와도 같은 기운이 느껴졌다. 아마 그들도 나에게서 그것을 느꼈을 것이다.
사도라고는 해도 나는 그들 대부분을 그다지 대수롭게 여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중 단 한 명,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 있었다. 그를 떠올릴 때마다 온 몸에 외면할 수 없는 무서운 전율이 일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강함의 깊이를 나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측정할 수가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음이 두려워졌다. 그의 이름은 [카인]이라고 했다.
앞으로 사도라 불리는 자들과 싸워야 하는걸까?
사실 “사도라고 불리는 자들”이라고 칭하면서도 나의 머릿속에는 카인과 자신이 싸우는 장면만을 반복해서 그려보고 있었다. 그 싸움은 언제나 그의 손에 의해 내 몸뚱아리가 갈기갈기 찢겨지며 끝이 났다.
마계. 이곳에는 분명 무언가 있다. 힐더가 이공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사도”들을 이곳 마계로 불러모으고 있다. 저들은 모두 나와 비슷한 이유로 여기에 올라탔을 것이다. 운명적인 이끌림. 그래. 그것이 대체 무엇일까. 힐더는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조급해하지는 않았다. 내가 운명을 피하지 않는 이상, 분명 운명도 나를 피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그저 기다릴 때였다.
마계에 일곱 빛깔의 빛이 쏟아지는 날은, 어김없이 새로운 강자가 외부세계에서 마계로 올라탄 것을 의미하였다. 오늘 올라탄 것은 또 다른 사도일까. 아니면 또 다시 뒷골목에서 조용히 썩어갈 이름 모를 풋내기일까.
출처 : 던전앤파이터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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