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장. 7인의 마이스터
마이스터 테네브(Teneb)는 고민에 빠졌다.
마이스터 엘디르(Eldirh).. 그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어째서 그녀는 마법을 쓸 수 있단 말인가! 그녀가 천계인이기는 한 것일까? 그렇다면 그녀가 내놓았던 수많은 아이디어들은 어쩌면 이 세상의 지식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군 젠장. 대체… 대체 뭐냔 말이다!!
엘디르는 언제나 최고였다. 7인의 마이스터 중에서도 그녀를 따라올 사람은 없었다. 매번 연구가 벽에 부딪힐 때 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은 그녀였다. 그녀가 없었다면 이 게이볼그 프로젝트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테네브는 언제나 그녀의 천재적인 발상의 근원이 무엇일지 궁금해 했다. 그에 대해 물을 때면, 그녀는 “명상” 때문이라고 했다. 테네브는 자신에게도 그 명상법을 알려줄 수 없냐며 웃으며 넘겼지만, 그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그녀의 아이디어라는 것은,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라기보단 발전된 미래의 기술처럼 보였던 것이다.
사실 그동안 테네브는 그녀를 의심하는 자신을 탓해왔다. 그녀의 뛰어난 재능은 자신에게서 강한 질투심뿐만 아니라, 존경심, 나아가서는 묘한 연정까지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연인인 젠느를 향해 느끼는 죄책감이 항상 가슴을 짓눌렀고, 그래서 엘디르가 가진 재능이 진짜가 아니라고 상상하는 것으로 유치하게 위안을 삼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되도록 빨리 이 혼란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정말로 그녀의 재능의 정체를 확인하기로 한 것이다.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마이크로 감시 로봇을 여럿 붙였다. 물론 이런 엄청난 일을 발견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법이라니!
테네브는 한밤중에 몰래 연구소에서 빠져나와 어디론가 정처없이 걷고 있었다. 챙겨나온 담배를 입에 물었다. 지난 10년간 한번도 피우지 않았던 담배였다.
<후.. 세달 만에 마시는 바깥공기가 고작 담배연기라니.>
「뭘 그리 괴로워해? 담배는 뇌의 화학물질 분비를 촉진시켜 창조적인 생각을 마구 떠오르게 해준다구」
「어째서 네 창조적인 생각을 위해 우리의 수명을 줄여야 하는건데?」
항상 티격태격하던 마이스터 라티와 볼간의 말다툼이 떠올라, 순간 훗, 하고 바람빠진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때였다.
「고민할 것 없다. 그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까.」
위압적인 목소리. 엄청난 크기의 그림자. 테네브는 뒤돌아보기도 전에 겁에 질려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뭐..뭐라.. 넌?」
거대한 그림자는 천천히 그의 앞으로 다가오며 말을 이었다.
「왜 그녀는 마법을 쓸 수 있는가… 왜 그녀는 내가 모르는 지식을 알고 있는가… 왜 나는 그녀를 사랑하는가…」
테네브는 조금 진정이 되었다. 암살자라면 말을 걸기 전에 죽였겠지. 마음이 조금 안정되자 큰 의구심이 들었다. 어떻게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거지? 게다가 엘디르에 관한 이야기는 그 누구에게도 한 적이 없었는데.
「거꾸로 된 도시의 신기루를 본 적이 있는가.」
「…?」
「아주 오래전 찬란한 과학문명을 발전시켰던 테라라는 행성이 있었지. 그 테라가 폭발할 때 도시하나가 떨어져 나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이공간을 떠돌게 되었지. 그러면서 여기저기서 올라탄 온갖 생명체들의 아귀다툼의 장이 되어버렸어. 그래서 모두들 그곳을 마계라고 불렀다네. 그 마계가 수백년전부터 바로 이 아라드 행성에 결착되어 있지. 거꾸로 말일세.」
천계인이라면 마계에 대한 전설 쯤은 다 알고 있다. 물론, 거꾸로 된 도시의 신기루가 바로 마계라는 가설이 확인된 바는 없지만… 이 녀석은 왜 갑자기 앞에 나타나 내게 이런 뻔한 강의를 하는 것일까.. 혹시?
「당신이 하고 싶은 헛소리는 그러니까….엘디르.. 그 엘디르가 마계인이어서, 그녀가 전해준 지식은 원래 고대 테라행성의 과학이었단 이야기인가..?」
「아무나 7인의 마이스터의 수장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은 아니로군. 바로 그렇다네. 그녀의 이름을 잘 생각해보게.」
「엘디르… 엘디르... 엘디르(Eldirh) 라… 그렇다면 설마……. 힐더(Hilder)!!」
사도에 관한 전설은 천계에서도 유명한 이야기였다. 마계에서 벌어진 용의 전쟁에서 바칼을 퇴패시킨 것은 사도들이라고 했다. 물론 그 때문에 바칼이 천계로 내려오게 되었다고 사도들을 비난하는 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대부분의 천계인들은 언젠가 그 사도들이 천계로 강림하여 바칼을 물리쳐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것은 천계인들 모두가 마음속에 함께 품고있는 거대한 신념이자, 종교였다. 물론 7인의 마이스터를 위시한 신흥 세력인 메카닉들은 종교보다는 과학의 힘을 믿었다.
「사도가.. 아니 그녀가 사도라면 왜 우리를 돕지?」
사도의 도움은 놀라움이자 기쁨이 될 수도 있었지만, 이유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건, 자네들을 정말로 강해지기 전에 빨리 나를 처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지.」
나를 처치… “나를” 이라고?
그는 다시 눈 앞의 큰 덩치를 올려다 보았다. 그랬군. 제길. 이건 바칼이었어!
「내가 멍청했군. 당신이 바칼이라니. 죽일려면 깔끔하게 죽이지, 뭘 그리 주절대는가? 아무리 나를 얼래보려고 해도 다른 마이스터들의 행방은 절대 말할 수 없으니, 시간낭비하지 말게.」
애써 으름장을 내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바칼이 나에 대해서 샅샅히 알고 있다면 다른 마이스터들도, 그리고 게이볼그 프로젝트도 완전히 노출되었다는 건가!! 이럴수가!!! 이제 거의 다 왔는데!!
「조금만 참아주게. 조만간 죽게 되겠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야.」
「당신의 이야기는 듣지 않을...」
「게이볼그 프로젝트를 멈춰주게나.」
「뭐? 하하하하하.」
웃음이 터져나왔다. 바칼이란 자가 이렇게 엉뚱한 소리를 지껄이는 자였다니? 웃다보니 자신이 바칼과 한가롭게 이야기나 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우습게 여겨져서 더욱 크게 웃었다. 하지만 웃음으로 모든 것을 넘겨버릴 수는 없었다. 역시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 대해서, 게이볼그에 대해서 다 안다면, 왜 그냥 다 죽여버리지 않고 굳이 나를 찾아온거지?
「그 게이볼그가 완성된다면,」
바칼의 위압적인 음성에, 테네브의 웃음이 잦아들었다. 바칼은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이었다.
「…내가 정말로 죽을 수도 있겠더군. 하지만 나는 그렇게 죽어서는 안되네. 아직 자네 종족 전체가 강해진 것이 아니야. 하물며 자네들 7인의 마이스터들조차 그다지 강하지 않네. 게이볼그는 엄밀히 말해 자네들이 만든 것이 아니지 않은가. 결국 그것은 고대 테라의 과학문명의 힘일세. 이래가지고는 이 행성의 멸망을 막을 수는 없어…」
「멸망? 이젠 별 소리를 다하는군.」
하지만 바칼의 말이 전부 헛소리는 아니었다. 게이볼그를 제안한 것도 엘디르였고, 프로젝트가 막힐 때 마다 해결책을 낸 것도 엘디르였다. 그래.. 그건 엘디르의 성과지. 엘디르가 정말 힐더라면…
「지금 당장이 아니라면, 나를 언제 죽일 건가?」
「자네들의 연구를 후대에 물려줄 준비가 되면.」
「후대에 라고? 그게 무슨 의미가…」
테네브는 반문하려다가, 그것은 정말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바칼이 마음만 먹는다면, 모든 성과들을 모조리 없애버리는 것 정도는 문제도 안될 터인데, 그것을 남겨준다니?
「그렇다면, 후대 사람들이 우리 마이스터들의 성과를 분석하여 자신의 기술로 흡수할 수 있도록 가만둔다는 것인가? 게이볼그가 아니라도 곧 네 녀석을 처치할만한 기술이 등장할텐데?」
「그것이야 말로 궁극적으로 내가 바라는 것이지. 그런데 참고로 당신이 생각하는 “곧” 은 꽤 오랜시간이 걸릴 것이야… 」
「결국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바칼.」
「이제 내 이야기를 들은 준비가 된 것인가.」
바칼은 담담하게, 그 동안의 자신의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용의 행성, 힐더와의 만남, 마계라는 곳, 사도, 루크의 예언, 그리고 힐더가 하려고 하는 일들과 자신이 하려고 하는 일들.
테네브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이윽고 바칼의 이야기가 끝나자, 테네브가 조용히 이야기를 이었다.
「이 모든 이야기의 증거라고는 엘디르가 마법을 쓸 줄 안다는 것 밖에는 없군. 하지만, 내가 믿건 말건 그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겠지. 어쨌건 당신은 게이볼그 프로젝트를 와해시킬테니. 그렇지 않나?」
「정확히 짚었네. 내가 자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까도 말했지만 자네들의 연구 성과를 후대에 남길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함이야. 만약 거절한다면, 자네들과 함께 그간의 성과들을 모조리 없애버리고, 다시 자네들과 같은 이들이 나오기를 기다리면 되겠지. 사실 한 백년 전에도 자네들만큼은 아니지만 꽤 성과를 낸 친구들이 있었어. 아쉽게도 그 친구들은 내 제안을 거절해서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 자네들의 성과가 뛰어나서 좀 아깝긴 하지만, 자네들 종족도 그동안 성장한 바가 있을테니 이번에는 수십년 정도만 기다리면 되지 않을까 싶네. 아주 큰 손해는 아니야.」
테네브는 자신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좋네. 그럼 두가지 부탁이 있네.」
「들어보지.」
「나는 죽어도 좋으니 다른 마이스터들을 살려주게. 그들이 남아서 훗날을 도모하면 되지 않는가.」
「그건 안되네. 자네들이 되도록 처절하고 장렬한 최후를 맞아야만 후대에 큰 전설로 남겨질 수 있지. 그래야 남은 사람들이 열의를 불태울거야. 아주 비극적인 연출이 필요하다네.」
「그렇다면… 쿠리오만이라도 살려주게. 우리의 성과를 후대에 알려주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야.」
「내가 요구한 바이니 들어주겠네. 대신 그가 살아남아 성과를 정리할 거라면 자네들 모두에게 많은 시간을 줄 필요는 없겠군. 또 한가지는?」
「젠느.. 그녀가 내 아이를 가지고 있다네.. 이제 세상에 나올 날이 머지 않았는데, 살려줄 수 없겠나..」
「인간이란 참 이상한 동물이로군. 자신이 죽는데 자신의 아이가 살아남건 말건 무슨 소용이 있는 거지?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그냥 어느날 갑자기 당신이 마이스터들을 모두 죽이고 게이볼그를 와해시킨다면, 후대 사람들은 당신의 정보력이 두려워서 감히 무슨 일을 할 생각을 하기 힘들 것이네. 그렇다면 내가 배신자 역할을 자처하겠네. 원래는 성공할 뻔한 프로젝트였으나, 내가 배신해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말이야… 이러면 후대 사람들은 두려움 없이 시도할 것이네.」
「좋은 생각이로군. 자네의 아이를 살려주도록 하겠네. 더 요구사항이 있는가..?」
어찌 없을 수가 있겠는가.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그만하고 그냥 사라져주게 바칼!
「머리가 복잡하겠지. 하지만 빨리 정리하게. 자네가 준비할 시간을 딱 3일 주겠네.」
바칼이 하늘높이 날아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도, 테네브는 미동도 하지않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의 입에는 불을 붙이지도 않은 담배가 쓸쓸하게 물려있었다.
바칼은 정확히 날짜를 지켰다.
마이스터 테네브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배신 때문에 일어난 일인 것같이 꾸며놓은 증거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살하였다.
마이스터 볼간은 미완성인 게이볼그에 타서 극렬히 저항하다가 게이볼그와 함께 장렬히 산화하였다.
마이스터 라티는 계속되는 흡연과 과로가 쌓인 상태에서, 바칼의 손에 의해 게이볼그가 파괴되는 장면을 보는 순간 충격을 견디지 못해 피를 토하고 사망하였다.
마이스터 쿠리오는 바칼의 침공에서 가까스로 도망친 후, 게이볼그의 잔해를 모아 이공간에 봉인하고, .그간의 모든 연구결과를 정리하여 후세에 남겼다.
마이스터 젠느는 바칼군의 침공으로 프로젝트가 실패하자 충격으로 조산하여 몸조리하던 중, 모든 일이 자신의 연인 테네브의 배신 때문이었음을 알게된 후 절망에 빠져 오드뤼즈에게 아이를 남긴 채 자살하였다.
마이스터 오드뤼즈는 프로젝트 실패 이후 쿠리오를 돕다가, 어느날 젠느의 아이를 데리고 홀연히 종적을 감추었다.
마이스터 엘디르는 바칼군의 침공하기 이틀전부터 행방이 알려지지 않았다.
출처 : 던전앤파이터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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