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쥬 지방에서 격투기는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대륙 전반으로 보면 수쥬의 전통 격투기보다 천재 격투가 섀넌 마이어가 창시한 새로운 류의 격투기가 훨씬 유명하다. 게다가 전국적인 격투가 양성소를 운영하는 섀넌 마이어가 철저하게 여성에게만 격투술을 전수했기 때문에 그동안 아라드 대륙의 격투가는 대부분 여성이었다.
"격투기는 섬세한 무술이야. 신중할 줄 모르고 그저 본능에 매달리는 남자들 따위에게 가르쳐 봤자지"
- 섀넌 마이어
반면 수쥬 지방에서 격투기는 남성들에게 주로 전해진다.
수쥬 지방의 모든 남성들은 걸음마를 시작할 때 즈음부터 6년에서 10년동안 수련원에 들어가 격투술의 기본기를 익히는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작은 나라인 수쥬가 오랜 역사 속에서 강대국들을 상대로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이자
"수쥬에 가서는 지나가는 개와도 싸우지 말라"
라는 속담이 생긴 이유이기도 했다.
수쥬 지방의 격투기는 대륙의 격투기와는 달리 다리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동선이 크고 좀 더 공격적인 움직임을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수쥬 지방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부와의 출입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타지에서는 외교사절에 해당하는 풍진을 제외하고는 정식 교육을 마친 수쥬 출신의 격투가는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때문에 최근들어 아라드 대륙에 많이 알려지고 있는 남자 격투가들은 사실 수쥬의 정통 격투가라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그들이 구사하는 격투기의 원류는 수쥬에서 온 것이 맞다. 그러나 수쥬 출신 격투가들은 대부분 개인적인 사정으로 수쥬를 빠져나온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신의 행적을 비밀스럽게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이 자신을 숨기면 숨길수록, 대륙에 퍼지는 격투기는 점점 여러가지 상황에 맞추어 변형되어 발전되었고, 그리하여 대부분 넨마스터 밖에 없는 수쥬 지방과는 달리 대륙의 격투가들은 넨마스터, 스트라이커, 스트리트파이터, 그래플러로 나뉘어 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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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삶과 바꿔 얻은 것, 그것이 저의 넨입니다."
넨을 다루기까지는 장기간의 수련이 필요하나 긴 시간을 들이지 않고 강력한 넨을 쓰는 방법도 존재한다. 바로 문신을 이용하는 것이다. 끔찍한 재료를 사용한다고 알려진 이 방법은 아라드에 극소수 남아있는 문신술사와 격투가들에 의해 시술되며, 이렇게 시술된 문신은 몸 속에 흐르는 넨의 흐름을 강제로 바꾸어 버린다. 이를 이용하면 일반적으로 만들 수 없는 강력한 넨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강력한 보상에는 대가가 필요한 법. 이 방법은 강제적인 넨의 통제가 몸에 부하를 주어 피 시술자의 수명을 1/3 가량 줄여버린다고 한다. 때문에 수쥬에서는 이런 문신을 엄격히 금지하여, 문신 시술자는 극형에 처하고 피시술자를 추방하는 등 강력하게 제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신 시술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강함에 대한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는 법이다.
아라드 대륙서 만날 수 있는 넨마스터 가운데 기운이 불안정하고 살기가 느껴지는 자라면, 대부분 은밀히 전해지는 불법적인 문신 시술을 받고 수쥬에서 쫓겨난 자들일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나 타인을 보호하는 넨의 본질적인 의미를 잊고 오로지 그 안에 담긴 공격적인 힘만을 끌어내려는 자들이니 조심해야 한다. 이들이 얼마나 강한지 시험해보려고 하는 일은 매우 무모한 짓이다. 이들은 자신의 수명을 줄여 힘을 얻었지만, 당신의 수명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줄어들 테니까.
각성명 | 광호제(狂虎帝)
무엇하나 버릴 용기도 없는 주제에
어찌 감히 나에게 부도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인가.
나의 남은 삶도 네 것만큼이나 소중하다.
하지만 병들고 늙어서 제대로 걸어다니지도 못할만큼 사는 것보다
나에게는 중요한 것이 있다.
가족의 죽음을 지켜본 적이 있는가.
그럼에도 너무 무서워서 흙탕물에 머리를 쳐박고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빌어본 적이 있는가.
이 세상 단 하나의 죄악이 있다면
그것은 약한 것이다.
그대들이 올바르게 사는 법 따위에 매달려있는 동안
나는 그대들이 수십년을 수련하여도 얻지 못할 넨을 얻었다.
나의 넨은 한이며 분노이자 그대들을 향한 혐오이다.
그대들의 질투를 머금으면 나는 더욱 더 강해지리라.
고작 저주받은 이 문신 따위나 두려워하는 그대들에게
광포한 호랑이와도 같은 넨으로
진정한 두려움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리라.
내가 바로 전설의 광호제가 되리라!
2차 각성명 | 염황 광풍제월(斂皇 光風齊月)
일찍이 한 남자가 있었다.
제 뜻대로 패도를 걸었으나 곧 다가올 비참한 말로를 앞두고 늘 수심에 차 있었다.
그의 유일한 적은 다름 아닌 시간이었으니, 날이 바뀔수록 조바심은 커져만 갔다.
이대로 생을 빼앗기는가? 아직 이루지 못한 뜻과 함께 이대로 진흙에 파묻히는가?
고뇌하였으나 마땅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홀로 깊은 산에 들어갔다.
가만히 앉아 죽는 것이 아니라 가혹한 수련을 통해 스스로 끝을 맞이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강인한 육신이 부서져 마침내 폭포 아래에 쓰러졌을 때, 그는 하늘에서 내리치는 벼락을 보았다.
세상을 밝히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사나운 빛이 죽음을 앞둔 그를 크게 깨우치게 하였다.
호흡이 바뀌었다. 꺼져가던 육신에 새로운 바람이 깃들었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껄껄 웃었다. 어찌나 소리가 컸던지, 산천초목이 놀라 벌벌 떨었다고 한다.
훗날 사람들이 찾아갔으나, 그는 온데간데없고 오직 아래의 글이 바위에 새겨져 있었다.
「태산을 닮고자 하였으나 발아래 돌멩이를 작다고 내던졌다.
천 리를 걸어 문득 고개를 돌리고서야 태산이 하늘 아래 있음을 알겠더라.
이 손이 무엇을 쥐어봤자 하늘을 쥐겠느냐, 바다를 쥐겠느냐.
구하고자 하면 멀어짐을 알고도 더 무엇을 탐하겠느냐.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랴. 이 생이 끊어져 쓰러진들 썩기밖에 더하랴.
다리가 굳어 초목이 된들, 만물이 흐르지 않는 일이 있더냐.
삶도 죽음도 일부임을 진즉 깨닫고도 무엇하러 마음을 곪았나.
물심이 무심 되어 공(空)을 보매, 마침내 막힌 것은 통할 것이요 채운 것은 비울 것이니.
세상 이치 무엇 하나 더할 것 없고 덜 것 없음을 이제야 알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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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남성 격투기가 크게 발전하지 못한 것은 남자에게는 격투술을 가르치지 않는 섀넌 마이어의 정책 때문에, 아라드 대륙의 남성들에게 정식으로 격투기를 배울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기존 아라드 대륙의 격투술이 여성의 신체에만 특화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이에 관심을 둔 몇몇 남성 격투가들은 자신들에게 맞는 방식으로 변형을 모색하였다.
그리하여 빠른 움직임으로 적에게 접근하여 다리 위주의 강력한 공격을 구사하는 식의 스타일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이것은 아마도 섀넌 마이어의 차별정책에 반발하여 최대한 여성과 구분짓는 남성만의 특성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동기가 어찌되었건 이러한 스타일은 대륙의 남성 격투가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였고, 진지하게 다리 위주의 격투술을 연구하고 연마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스스로를 스트라이커라고 칭했다.
하지만 여성 격투가들은 이런 스타일을 인정하지 않았다. 형식도 없이 단순하고 직선적이며, 뒤를 생각하지 않고 돌진하기만 하는 무식한 기술로 치부하며 무시했던 것이다. 결국 이것은 두 진영간의 큰 무력충돌로 번졌고, 아직은 세력이 약했던 남성 스트라이커들은 도시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이 후 쫓겨난 이들은 산 속으로 숨어들어 모이게 되었고, 이로 인해 산 속 남성 격투가 수련장이 번창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아직 스타일이 정립되지 않은 남성 격투가들에게 조용한 곳에서 진중하게 수련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자, 이들의 기술은 급격하게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여성의 격투기가 평소에 잘 훈련된 신체를 바탕으로 차분하게 대응하는 방식인데 비하여, 남성의 격투기는 역사가 깊지 않은 만큼 일정한 형식이 없이 적이 보이면 막무가내로 달려들어 공격을 퍼붓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무모하기는 해도 순간적인 폭발력을 가지기 때문에, 가끔 여성 격투가 고수들을 압도하기도 하며 여성 격투가들은 이길 수 없는 적들을 이겨내기도 하는 의외성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형식의 가치를 부정하는 이들이 즐겨 입에 올리는 예시이기도 하다.
각성명 | 무극(武極)
무예에 끝이란 없다.
인간의 몸은 그야말로 무한하여,
수련을 거듭할수록 이전의 한계를 뛰어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나를 칭하여 무극(武極)이라고 하는 것은 가당찮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너희들보다 뛰어나다는 의미라면,
내가 소리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고 강철보다 단단한 다리를 가졌으며,
너희는 감히 손댈 수 조차 없는 불같이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있어
그것만이 나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할 유일한 방법이라면,
나는 무극이다.
그러나 삶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은
목표를 성취해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오는 것이니,
함부로 한계를 설정하는 자는 절대로 그 한계에 도달할 수 없다.
극(極)에 도달한 순간 언제나 또 다른 극이 기다리고 있음을 깨달으라.
타인이 설정한 한계 따위에 집착할 여유 따위가 인생에 있을 리 없으니,
잡힐 듯 자꾸만 멀어지는 한계를 따라잡기 위해 목숨 바쳐 수련하는 것만이
나의 삶의 모든 것이다.
2차 각성명 | 패황(覇皇)
한계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해 만든 족쇄인가.
넘어야하는 것이라면 무엇하러 집착하는가.
상정하지 마라. 이름을 붙이는 순간, 무한은 유한으로 격하된다.
팔이 없다면 다리로, 몸이 없다면 의지로.
나를 옥죄는 모든 틀에서 벗어나 오직 앞으로.
아무도 보지 못한 끝. 나를 완성하여 마침내 이 점에 도착하니.
이 한 점, 극(極)을 부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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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궁창의 어느 뒷골목에서는 공공연히 "데스 매치"라는 돈내기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무런 규칙이 없는 진짜 싸움.
진 사람은 보통 목숨을 잃고 운 좋으면 팔다리정도 잃는다는 잔인한 승부.
당연히 불법이었으나 세상이 혼란스러워질수록 사람들은 뒷골목 싸움에 열광하였고 결국 당국에서
어쩔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커지고 번창하였다.
스트리트 파이터 라고 불리는 남자 격투가들은 대부분 이 뒷골목 돈내기 싸움꾼 출신이다.
그러나 여성 스트리트 파이터의 리더인 패리스가 "목숨을 가지고 장난질한다" 는 이유로 이들을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이들에게 뒷골목에서 전수되는 스트리트 파이팅을 정식으로 배울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기록에 의하면 슈주에서 아라드 대륙 뒷골목으로 흘러들어온 자들이 스트리트 파이팅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게 스승이 되어주었다고 한다.
거기에 패리스의 격투술을 어깨너머로 곁눈질 한 것들과 자신들 스스로 만들어낸 무기들을 더해 지금의 남성 스트리트 파이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 지금의 속설이다.
아직 살아남아 있는 남성 스트리트 파이터라면 매우 위험한 자들이다.
아무런 규칙이 없는 극한의 생존 게임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극도로 약삭빠르고 치사하며 잔인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각성명 | 천수나한(千手羅漢)
전쟁의 신, 천수나한(千手羅漢) 이시여.
세상은 지금 너무나 혼란스럽습니다.
지옥에서 온 괴물들이 날뛰는 세상인데도
인간들은 사욕을 위해 서로 살육을 벌일 뿐입니다.
그 사이에
하나둘씩 내지른 비명소리가 모여 어느덧 하늘을 물들이고,
영문 모를 죽음들은 누군가의 피눈물이 되어 바다를 적십니다.
천수나한 이시여.
지금 오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전설처럼 눈이 멀게 되는 번개와 귀가 찢어지는 천둥과 함께
천개의 팔로 한 번에 천개의 목숨을 거두면서
세상을 완전히 멸하시어
이 혼란을 끝내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어찌 그토록 느긋하시단 말입니까…
얼마나 더 많은 통곡소리가 필요하십니까…
천수나한 이시여.
어서 내려오셔서 이 비극을 끝내주소서.
그리하여 아무런 의미없이 연명하는 이 세상과 함께
자식을 잃은 슬픔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이 목숨도 얼른 거두어 가소서..
- 어느 어머니의 기도문. 작자 미상.
2차 각성명 | 명왕(冥王)
빛은 어둠에 삼켜질 뿐이라고 어떤 얼간이가 말했지.
무조건 숨으라는 말을 조언이랍시고 떠들어대던 녀석이었어.
그런데 보라고. 제일 먼저 죽은 건 누구지?
무섭다고 도망치고, 더럽다고 피해버리던 그 녀석이야.
약한 놈한테 감당 못 할 적을 상대하라고 하는 건 아냐.
하지만 언제까지 엉덩방아 찧고 앉아있을 셈이냐?
아무도 봐주지 않는 뒷골목 인생이라고
아무 데나 쓰러져 세상에 저주나 퍼부을 놈은 꺼져.
이제부터는 내가 법이다.
밝히지 못할 바에야 어둠이 되어 모두 쓸어버리겠어.
잘 보라고. 정말 재밌는 싸움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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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격투가 밖에 없던 아라드 대륙에 남성 격투가가 나타나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유행을 타고 대중적 인기를 끌게 되자 여기저기서 남성 격투가 수련 도장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게 되었다. 물론 모든 이들이 이런 현상을 반겼던 것은 아니다.
그 중에서도 "흑진단(黑震團)"이라고 불리는 무리가 있었는데 이들은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이름 꽤나 날린다 싶은 도장들에 무작정 쳐들어가 정면으로 승부를 걸었다. 진 쪽이 해산하는 규칙을 가지고 말이다. 그러나 아직 "흑진단"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이 진 적은 없는 듯 하다.
"격투기의 본질은 자기 수련에 있다. 순수하게 강해짐을 갈망하는 것이 아닌 그 밖의 모든 행위는 허용치 않는다."
- 흑진단
흑진단으로 인하여 멀쩡한 도장들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게 되거나 이들과의 승부로 인하여 중상을 입는 자들이 속출하였다. 피해가 계속되자 나라에서는 이들을 지명수배하였으나 거처를 정하지 않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신출귀몰함으로 인하여 아직 잡히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정통성 있는 도장들에게는 함부로 도전하지 않고, 지역을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부정하게 재물을 모은 도장들에게서 재물을 빼앗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는 등 의적과도 같은 행위로 크게 대중적 지지를 얻고 있어서, 흑진단의 위세는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이들은 초기 수쥬 지방의 격투술을 기반으로 한 실전 기술들을 사용하였으나, 오랜 싸움으로 자신들의 격투술을 실내에서 싸우기 적합한 "잡기" 기술 위주로 발전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기술은 점점 하나의 유파를 형성하게 되어 "흑진류" 라고 불리게 된다. 허나 이를 연마하는 사람들은 지명수배중인 흑진단의 이름을 쓰는 것을 꺼려하였으므로 현재는 자신들 스스로를 잡기기술 위주로 싸우는 여성 격투가와 같이 "그래플러" 라고 칭하고 있다.
각성명 | 자이언트(Giant)
그것은 악귀였다.
우리는 다수였으나, 그는 혼자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아마도 모두들 나처럼 후회하고 있으리라.
부끄럽다.
허울좋은 무도가라는 이름에 취해 허송세월하던 나날들과,
수련을 게을리하고 그저 뽐내는 데만 열을 올렸던 과거들.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문 앞에는 그가 서 있었다.
분명 그의 몸이 그리 크지는 않았음에도,
나에겐 엄청난 거인처럼 느껴졌다.
내가 그를 지나쳐 문밖으로 나가는 일 따위는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떨리는 다리로 간신히 버티고 서 있을 뿐이었다.
이제 스스로는 어떠한 미동조차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다음으로 움직이게 되는 건 아마도 그의 손에 의해서가 되겠지.
그렇지만 내팽개쳐질 것은 내 몸뚱아리만이 아니었다.
그의 당당함과 무예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나의 거짓된 명예와 자존심, 그리고 부끄러운 과거를
이미 내동댕이 쳐버렸으니.
대지가 진동할만큼 울려퍼지는 그의 고함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눈을 감아버릴 수 밖에 없었다.
2차 각성명 | 그랜드 마스터(Grand Master)
모든 것은 나의 부덕이다.
혈기에 취해 무의 경진에 매달려 적을 만들었고
재물을 나누어주는 것에 만족하여 이후를 읽지 못했다.
나를 믿는 아우와 제자가 보이는 힘에 집착하게 된 것도,
흑진단의 참뜻이 흐려진 것도, 모두 나의 부덕이다.
무의 순수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외치면서도
가짜를 처벌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믿었던 내가
부끄럽고 참혹하여 고개를 들 수 없다.
스승님께 꾸짖음을 청하고 싶으나
가는 세월이 부질없어 이 또한 마땅치 못하다.
늙은 몸을 깊은 곳에 숨겨 죄를 뉘우치려 하나
후배들이 서로를 헐뜯는 모습에서 차마 눈을 돌릴 수 없다.
쇠약하고 과오가 많은 나의 앞에 무의 참뜻을 아는 이가
강맹하고 고요한 의지를 정하여 찾아온다면
비급을 그에게 전달하여 흑진단의 반석을 나 대신 닦게 하리라.
- 흑진단의 단주가 남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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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던전앤파이터 공식 홈페이지
http://df.nexon.com/df/guide/TO/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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