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1. 혼돈의 오즈마
때는 지금으로부터 800여년전, 드넓은 평원 위에 좌우로 갈라선 수만의 군사가 숨죽이며 대치하고 있었다.
「오즈마(Ozma)..... 친구여, 정녕 그대가 나를 죽이려 하는가.」
제국의 명장 카잔(Khazan). 그의 목소리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떨리고 있었다.
「카잔이여. 그대가 반역을 도모하였다면, 나로서는 제국의 명령을 따를 수 밖에 없다네...」
그러나, 제국 제일의 마법사 오즈마의 목소리는 확신에 찬 그것이 아니었다.
「오즈마여, 나는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네. 단지 나를 음해하려는 무리들로부터 이 한몸 지키려고 하는 것이야. 그들의 말을 믿으면 아니되네!」
「친구여, 그렇다면 잠시 병사를 물리게. 무언가 오해가 있는 것이 분명허이. 내 직접 황제 폐하께 아뢰보겠네!」
「이보게, 나를 음해하려는 무리가 바로... 황제라네!」
「그말은... 반란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 아닌가... 친구여, 나를 용서하게.」
오즈마는 진격을 명했다. 밀려오는 오즈마의 군사를 가만히 지켜보던 카잔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갑옷을 입지 않은 채로, 한 손에는 도끼, 한 손에는 칼을 들고서 대갈일성을 지르며 뛰쳐나갔다.
. . . . . . . . . . . .
「킥킥킥킥........크하하하하..........」
가슴을 파고드는 슬픈 웃음소리에 오즈마는 서서히 정신이 들었다.
「친구여, 정신이 드는가. 우리는 원래 이렇게 되도록 예정되어 있었나보군. 크하하하하...」
오즈마의 안구에 잡힌 카잔의 모습. 그것은 인간의 가죽을 억지로 입고 피를 뒤집어쓴 악귀같은 모습이었다. 두 다리는 묶여있었으나, 그의 두 팔은, 묶어놀 필요도 없다는 듯이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자...자네. 그 팔이 어떻게 된 것인가!!」
「놈들이 내 팔이 무서웠나보군. 힘줄을 모두 뽑아놓은 것을 보니 말이야.」
「그... 그럴수가!」
오즈마는 서서히 기억속의 일들을 회고해보았다. 모든 것이 명확했다. 반란한 카잔을 진압하라는 제국의 명령. 카잔과의 조우중에 갑자기 밀어닥친 병사들. 복장은 달랐지만 그건 제국 군사들의 움직임 같았어... 아... 왜 수많은 장군들을 놔두고 일개 마법사인 나에게 그런 명령을 내렸던 것일까. 그렇구나. 처음부터 음모였구나... 카잔 나를 동시에 제거하기 위한 음모였어!
「아....」
잠시 생각에 빠진 뒤 가벼운 탄식을 내뱉는 오즈마를 보고 카잔이 말했다.
「자네도 이제 모든 것을 깨달은 모양이군. 그렇다네.. 그렇다네...」
카잔은 귀신같은 형상을 하고선 인간의 육체따위는 초탈했다는 듯이 그렇다네.. 만을 읊조렸다.
「인간으로서의 나의 삶은 아마도 여기까지겠지. 우리가 이런 상태라면 아마 우리 가족들도 무사하지 못하겠지. 나의 핏줄은 여기서 끊기겠구나. 나는 그것이 아쉽다네.」
「가족... 그래. 무사하지 못하겠지... 아.. 그렇다면 나의 리즈(Reese)도...??」
그때, 쇠창살을 뚫고 어디선가 길쭉한 봉이 날아와, 오즈마의 안면을 강타하였다.
「반역자 주제에 어디서 망발이냐. 함부로 황제폐하의 후궁의 함자를 더러운 입에 올리다니.」
오즈마는 일어나 쇠창살에 매달려 절규하였다.
「그..그게 무슨 말이오! 더 자세히 얘기해주시오!」
감옥의 창살이 열리고 오즈마는 병사들에게 두들겨 맞으며 무거운 푸대자루같이 질질 끌려나갔다.
「이보시오! 리즈는 어떻게 된 것이오! 이보시오! 말을 좀 해주시오!」
축축하고 퀘퀘한 공기가 오즈마의 멀어져가는 외침으로 엉겨붙고 있었다.
. . . . . . . . . . . .
「오즈마... 오즈마.」
누군가 자신을 부른다.... 카잔인가....반사적으로 눈을 떠보려고 하였다. 아... 그들이 내 눈에서 빛을 앗아갔었지... 어둠이란... 참 익숙하지 않은 것이로구나....
「아.. 카잔..」
「이봐... 괜찮은가.」
「....」
내가 더이상 말이 없자, 카잔도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이제 서로에게 불어넣어줄 희망도 없다.
<이럴수는 없다... 우리둘을 향한 그들의 질투를 경계하지 않은 것이 이런 결과를 낳았구나..>
<카잔, 나의 가족, 그리고 나의 불쌍한 리즈.... 리즈여... 그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나는 이대로 먼지로 산화할 것인가... 너무나도 뛰어났던 두명의 인간은, 그렇지 못한 인간들의 질투에 의해 반역죄로 몰려 처형되었다... 라고 역사책에 한줄 기록되겠군. 아니다. 아니야. 그들이 그렇게 우리가 미화되도록 놔두지 않겠지....>
「인간이란 종족들... 이들은 정녕 구원받을 수 없는 생명체란 말인가..?」
오즈마는 자신도 모르게 낮게 읊조렸다. 카잔은 미동도 없이 가만히 흘려듣고 있었다.
문득 오즈마의 생각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저 이 행성에 사는 하나의 종족을 없애버리는 것. 그렇다고 해서 뭐 그리 큰 문제가 생기겠는가. 대관절 인간이란 종족이 무엇이길래, 자신들만이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인양 행세하고 다닌단 말인가. 저 야만스러운 괴물들조차 동족에게 이런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 정화다... 정화야. 이 더러운 인간들이 우글거리는 세상을 나는 정화시켜야 한다! 그대로 놔두면 모든것이 인간에 의해 오염된다. 인간들을 세상에서 멸망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정 이땅에 살아가는 생명체들을 구원하는 길이다!!>
<그러나 어떻게?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 . . . . . . . . . . .
「어떤가? 내 제안이?」
「내앞에서 사라져라. 사악한 존재여. 너를 마주하는 것 만으로도 나의 영혼은 타락해가고 있구나.」
오즈마의 한 손에는 시뻘건 불덩이가 그의 찌푸려진 두 눈과 함께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자신의 영혼을 판 댓가로 세상을 파멸시킬 힘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아무에게나 오는 것이 아니야. 너는 선택받은 인간이라구. 으흐흐흐흐....」
오즈마는 더이상 그 기분나쁜 웃음 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듯이 손에서 타오르던 불덩이를 힘껏 날려버렸다. 그러나 불덩이는 눈 앞의 시커먼 존재를 통과하여, 뒤쪽에 있는 벽에 큰 크나큰 파열음을 내며 큰 구멍을 내었을 뿐, 그 보이지 않는 존재는 여전히 기분나쁘게 속삭이고 있었다.
「여어. 그렇게 열내지 말라구. 그대가 그렇게 협박하지 않아도 나는 곧 눈앞에서 사라질테니. 하지만, 명심해. 나는 강요를 하는 것이 아니야. 어차피 네게 일어날 일을 예고해 주는 것 뿐. 언젠가 그대가 나를 찾아올 테니 기대하고 있겠어..」
눈앞의 존재는 서서히 옅어지며 형체를 잃어갔다. 그의 마지막 한마디만 메아리칠 뿐이었다.
「그리고 사실 날 부른건 자네 자신이라네.. 키히히히히..」
. . . . . . . . . . . . .
그 녀석은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단 말인가. 아... 인간! 인간들이여! 그대들의 권력욕과 질투로 인하여, 내 마음속의 악마는 생명력을 얻겠구나... 인간들이여. 이제 그대들은 역사상 본적이 없는 끔찍한 악마를 대면하게 되겠구나.
갑자기 오즈마가 광소를 터뜨리기 시작하였다.
「으하하하하... 」
「오즈마....?」
「카잔. 내말을 잘 듣게. 우리는 현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두명의 인간이라네. 그렇지 않나?」
「....」
「난 우리 두사람이 이렇게 사라지는게 너무나 억울하다네.」
「무슨.. 계획이 있는가.」
「흐흐흐... 그대는 소멸의 신이 되게나. 나는 혼돈의 신이 되겠네.」
「그..그게 무슨 말인가?」
그때였다. 쇠창살이 열리며 감옥을 지키던 병사들 몇이 카잔을 들어올려 끌고 나가려고 했다. 오즈마는 다급히 소리쳤다.
「카잔! 친구여, 기억하게! 아직 끝나지 않았다네! 꼭 살아남아야 하네. 내가 반드시 자네를 찾아낼 것이야! 카잔, 카자안!!」
오즈마는 눈이 멀어 보지 못하였겠지만, 오즈마의 외침이 계속되는 동안 병사들에게 함부로 끌려가던 카잔은, 오즈마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알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 오즈마의 말을 믿겠다는 뜻이었는지, 아니면 허황된 말을 뱉는 친구에게 보내는 마지막 서글픈 인사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 . . . . . . . . . . .
「.....이후에 카잔은 스트루 산맥 너머로 추방당했고, 오즈마는 남쪽 바다에 버려졌단다. 오즈마는 다시 자신에게 다가온 사신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여 혼을 팔아 사악한 힘을 얻었고, 가까스로 목숨을 연명하고 있던 카잔의 목숨을 거두어 소멸의 신으로 만들어버렸지. 하지만 카잔은 오즈마의 계획에 동참하지 않았어. 그냥 귀신이 되어 세상에 떠돌기로 하였지. 이때부터 대륙 곳곳에는 카잔의 귀신에 씌이게 되는 카잔 증후군이라는 병도 생기게 되었지...」
명문 크루세이더 가문인 로젠바흐 일족의 원로이자, 대주교인 메이가 로젠바흐(Magar Rosenbach)는 옛일을 회고하듯 수백년 전의 일들을 자신의 다리를 베고 누운 어린 손녀 오베리스 로젠바흐(Overis Rosenbach)에게 얘기하고 있었다.
「그 다음부터는 너도 학교에서 배웠겠지? 오즈마가 인간들을 위장자(인간으로 위장하고 있는 괴물)로 만드는 저주 - 역사책에는 피의 저주라고 되어있지? - 를 내려, 인간들이 서로 스스로 불신하게 만들고 혼란을 조장하게 되자, 신께서 성스러운 계시를 내려 보통인간과 위장자를 구별할 수 있는 미카엘라(Michaela) 님을 내리셨단다. 그 분으로 인해 우리와 같은 "프리스트"라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위장자들과의 싸움을 준비할 수 있었지.」
메이가는 따뜻한 손으로 손녀의 머리칼을 쓰다듬고 있었다.
「마침내 오즈마의 위장자 군단과 미카엘라 님이 이끄는 프리스트들이 검은 대지 부근에서 대규모 전투를 벌이게 되었고, 우리 프리스트들이 오즈마의 위장자 군단을 다른 차원으로 쫓아내는데 성공하는데, 이 전투의 이름을 아니? 오베리스.」
「검은 성전(Black Crusade)!」
「그래, 잘 알고 있구나. 하지만 비록 오즈마를 쫓아내는데는 성공했지만, 그는 분명 아직 어딘가에 살아있단다. 언제 다시 이 세상을 공격해올지 몰라. 세상에는 아직도 많은 위장자들이 숨어있고. 이 때문에 우리가 존재할 의미를 잃지 않는 것이란다. 알겠지? 오베리스.」
「네. 그런데 할아버지?」
어린 소녀의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메이가를 직접 응시하고 있었다.
「오즈마는 원래 착한 사람이었잖아요?」
「그렇지. 오즈마는 옛날 그 당시에 카잔과 함께 세상을 구한 당대 최고의 마법사 였단다.」
「음... 그럼 이제 세상에는 옛날에 당신을 괴롭히던 나쁜사람들은 다 죽었고 할아버지나 할머니같이 착한 사람들만 있다고 얘기하면 다시 착한 마음이 돌아오지 않을까요?」
「하하하하.. 기특한것. 그래그래. 세상의 생명체들은 처음부터 악한 것이 아니란 말이지? 우리 예쁜 손녀가 고지식한 프리스트 원로들보다 훨씬 깨달음이 깊구나! 내 언젠가 오즈마를 직접 만날 기회가 있다면 한번 얘기해보마.」
「하지만 조심하세요, 할아버지. 말을 안들으면 혼내주어야 할테니까요.」
「그래그래. 정말 똑똑하구나. 똑똑해. 이 할애비는 평생 너를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그러나, 어여쁜 손녀가 걸어가야할 험난한 길이 보였던 것일까. 메이가의 얼굴은 그의 웃음만큼 밝지 못했다.
<이런 평화로운 시대가 영원히 계속되면 좋으련만. 내가 눈감기 전에 세상이 더이상 우리 프리스트 같은 사람들을 원하지 않게 되는, 그런 진정한 평화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예쁘고 똑똑한 우리 오베리스가 그저 평범하게 행복을 누리고 살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출처 : 던전앤파이터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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