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문 기사
"대령님 유명 인사네요."
겐트 사령부 소속 루카스 소위는 서류에 푹 파묻히다시피 한 운의 눈앞에 빳빳한 신문을 들이밀었다. 아직 잉크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신문에는 운의 어릴 적 사진과 언제 찍혔는지 모를 최근 사진들이 큼지막하게 실려 있었다. 화질이나 상황을 따져봐도 본인의 의사를 구하지 않았음이 명백했다. 신문사는 아예 작정했는지 그의 이야기를 특집 코너로 편성하여 며칠에 걸쳐 담아낼 계획이었다. 하지만 운은 무심히 서류로 눈을 돌렸다.
"그런가."
"요즘 기자들이 자주 대령님을 찾는다 싶더니 또 특집이 나오네요. 팬들이 더 늘어나는 거 아닙니까?"
"모르겠군."
"천계를 울린 '꼬맹이 라이오닐'이 늠름한 군인이 되어 나라를 구했다. 전 사령부 최연소 대령으로 유명한 그는 천계군 최연소 소년병 출신으로도 유명하며, 최근의 공을 인정받아 준장으로 진급할 기회를 얻었으나..."
"그만 읽게."
운이 조용히 부탁하자 루카스가 자기 일인마냥 아쉬워하며 들고 있던 신문을 내렸다.
"왜 거절하셨습니까? 준장이라고요. 사령부 최초의 20대 준장! 월급도 많아질 거고 부하도 많아질 테니 우리 일도 줄 텐데..."
슬쩍 본심을 드러내는 루카스에 피식거리며 듣던 테미 대위가 끼어들었다. 루카스와 마찬가지로 운보다 연상인 그녀는 계속되는 감축 방침 때문에 세 명으로 줄어든 이 사무실에서 홀로 여자였다.
"우리가 할 야근을 대령님이 다 하시는데 무슨 소리야? 자네나 숫자 틀려서 일 늘리지 마. 매번 찾아내는 게 쉬운 줄 알아? 그만 놀고 아까 하라고 했던 거나 빨리 줘."
"이상하군."
펜을 멈춘 운이 중얼거리자 테미가 손을 크게 휘저었다.
"이상하지 않아요. 소위가 숫자나 단위를 틀리는 건 자주 있는 일이라고요."
"나에 대한 기사를 내는 게 이상하다는 뜻이네. 안톤은 지난 일이고, 이런 대형 신문사는 귀족의 자본으로 움직이지. 이제 와서 군을 띄워줄 이유가 없는데."
"이건 군이 아니라 대령님 개인을 띄우는 겁니다."
자기 자리로 돌아간 루카스가 운의 의문에 답했다. 독촉받은 서류를 찾으며 서랍을 있는 대로 열어보던 루카스는 운이 말없이 기다리는 걸 깨달았다.
"말씀대로 신문사 대부분은 귀족의 입김 때문에 군에게 야박하죠. 군 병원 신축을 무산시킬 때도 신문사가 앞장섰고요. 말로는 있는 국립 병원이나 잘 쓰라는 거였지만, 귀족의 개인 병원에 환자를 끌어들이려고 하는 거였잖아요."
"그래 놓고 지금은 돈 없는 군인들이 치료받을 데가 없다며 비난을 쏟아내고 있죠. 황녀님이랑 사령관님 탓하면서." 테미가 투덜거렸다.
"이것도 마찬가지예요. 대령님의 기구한 사연에만 집중하면서 동정이나 하고 있죠. 이건 영웅 취급도 뭣도 아니에요. 인기 끌기지."
"귀족이 대령님의 인기를 올려서 뭐하게?"
루카스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대령님이 아니라 신문의 인기 말입니다. 옛날부터 유명했잖습니까. 꼬맹이 라이오닐의 이야기. 저 불쌍한 애를 도와줘야 한다고 엄청 난리였죠. 그 이후로 무기 생산량이 크게 늘었고요. 대민지원은 없었다고 들었지만 귀족 소유의 공장은 큰 돈을 벌었죠... 아무튼, 그때부터 사람들은 대령님을 향한 구원자 심리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계속 관심을 갖는 거죠. '쟤는 우리 덕분에 저렇게 잘 된 거다.'라며. 주워온 강아지가 재롱떠는 걸 보며 흐뭇해하는 거랑 비슷한 겁니다."
테미는 고민했다. 루카스의 비유가 틀린 것 같지는 않지만, 상관을 강아지에 빗대는 것은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운 본인이 열심히 듣고 있는 걸 보니 끼어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가. 하지만 전쟁이 끝났으니 내 이야기는 이제 흥미 없을 텐데."
"대령님은 일종의 트로피니까요. 트로피는 잘 닦아서 눈에 보이는 곳에 두는 법 아니겠습니까. 요즘 귀족가에서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둘째나 셋째를 대령님과 결혼시키라고 해요. 무법지대 출신이라는 악조건도, 상대가 꼬맹이 라이오닐이라면 예쁜 장식에 묻은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죠."
루카스는 간단히 말했지만 운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무법지대에게 뼈아픈 패배를 맛본 사람들은 다시 그들을 무시하고 차별함으로써 상처를 회복하려고 하고 있었고, 이는 황녀가 골치를 썩이는 문제였다. 그러니 운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런 사회 현상이 아니었다. 우월감, 과시욕.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심리 요인은 '바다 멀리 어떤 산이 있다더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기 설명에 자화자찬하고 있는 루카스와 생각에 잠긴 운을 본 테미가 마침내 끼어들었다.
"뭔 소리야. 그냥 요즘 제국군이 짜증 나니까 대항마로 대령님 기사를 낸 걸 수도 있잖아. 아님 혹시 알아? 사장이 사실 대령님의 열렬한 팬이어서, 화려한 공개 구혼으로 대미를 장식할지. 자네가 말한 '바칼이 숨겨놓은 해저성'보다 더 현실적인 거 같은데."
운은 루카스의 모험적인 공상보다 테미의 발랄한 상상이 더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루카스가 테미를 향해 외쳤다.
"바칼은 분명히 숨겨놨을 거라니까요!"
"안톤만 봐도 사도가 도둑이 무서워서 바다 아래에 성을 지었을 거라는 이야기는 안 믿겨져. 그런 소리나 하니까 자네 형님이 제발 입 다물고 있으라고 말씀하신 거 아냐. 이제 그만하고 아까 달라고 했던 초안이나 내놔. 분명히 또 엉망으로 써놨을 거야. 황녀의 정원에 있는 친구가 저번에 얼마나 웃었는지 알아? 내가 부끄러워서 정말..."
루카스는 찍소리도 못하고 입을 다물었고 테미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신문 기사에서 시작된 잡담은 그렇게 홍일점의 승리로 끝났다. 질문할 타이밍을 잡지 못한 운은 다시 업무로 돌아가려 했다.
"실례합니다. 라이오닐 대령님, 대장군님이 회의 자료를 들고 와달라고 하십니다."
사령부 소속의 누군가가 잭터의 호출을 전달했다. 시계를 확인하니 아직 오후 2시였다. 운이 주섬주섬 서류를 챙기는 모습을 보며 루카스가 걱정스레 물었다.
"빨리 부르시네요. 검토 못 한 거 있으면 도와드릴까요?"
"아니. 재검토까지 끝냈네. 나는 이대로 외부로 나갈 것 같으니 자네들은 정시에 퇴근하게."
"한 시간 일찍 나가면 안 될까요? 소위가 지난 사격 시험에서 또 떨어져서 옆에서 좀 봐야겠어요."
루카스의 얼굴이 벌개졌다. 운은 별 표정 변화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게."
테미는 루카스에게 의미 깊은 시선을 보내었다. 기가 죽은 낙제자는 고개를 푹 수그렸다. 책상 옆에 치워둔 신문에는 운에 대한 기사 아래에 잭터의 사퇴를 요구하는 사설이 큼지막하게 실려 있었다.
----------------------------------------------------------
출처 : 던전앤파이터 공식 홈페이지
'던전앤파이터 스토리 모음 > 어느 가을, 겐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던전앤파이터 스토리 - [어느 가을, 겐트] 6. 아침 소동 (0) | 2016.12.13 |
---|---|
던전앤파이터 스토리 - [어느 가을, 겐트] 5. 한밤, 그리고 이른 아침 (0) | 2016.12.12 |
던전앤파이터 스토리 - [어느 가을, 겐트] 4. 두 번의 저녁 식사 (0) | 2016.12.11 |
던전앤파이터 스토리 - [어느 가을, 겐트] 3. 오후, 궁궐 (0) | 2016.12.10 |
던전앤파이터 스토리 - [어느 가을, 겐트] 2. 사령관실 (0) | 2016.12.09 |